헛되도다!
Tent maker인 사도 바울이 처음 사용한 에끌레시아(Ekklēsia)는 ‘민회’를, 그 민회가 열린 광장은 ‘아고라(Agora)’, 그러니 ‘교회’는 에끌레시아다.
전도서(傳道書, Ecclesiastes)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Vanity of vanities! Everything is meaningless)!’ 내일이 아닌 오늘을 강조한다.
사실, ‘헛되도다’는 히브리어 헤벨(Hebel) 즉 증발해 버리는 수증기를 뜻한다.
로마의 개선장군(凱旋將軍)이 시가행진(Parade)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Memento-remember, mori-to die)” 즉 “죽는 다는 것을 잊지 말라”를 외쳐, 겸손하게 행동하라고 경고한 것이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을 즐겨라, seize the day)과 일맥상통했다가 현세의 부귀영화는 부질없는(Vanitas) 것! 허무주의를 상징하기 시작했다.
17C ‘공허한’ ‘헛됨’의 바니타스화(畵)는 죽음의 필연성을 상기시키는 두개골, 삶이란 모두 서서히 그렇게 조금씩(썩은 과일), 지금은 아름답지만 결국에는(꽃, 촛불), 음악(악기와 악보)처럼 날아가 버리는 것, 짧은 것(시계), 현세적 지식(낡은 책, 잉크병과 펜, 지도, 망원경, 지구본)의 무용함, 영화(거품)도 세속적인 쾌락(술잔, 고급 샴페인, 담배, 주사위, 트럼프 카드)도 명예와 권력(진주, 보석, 지갑...)도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 허무함을 보여준다.
미국 NM, AZ, UT주(州) 등에 사는 ‘들판(Field)’이란 뜻의 나바호(Navajo) 원주민(Native American)의 메멘토 모리는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아라”다. 암호통신병의 영화인 코드 토커(Code Talker), 일본군은 해독이 불가능한 나바호족 언어가 태평양 전투에 사용, 큰 공을 세웠다.
인생을 즐기라!
어찌할 수 없는 내일은 그저 내일로 미루라!
안 그러고 싶은 인생이 어디 있으랴?
말처럼 쉬우면...
그래서 베리타스(Veritas)! 진리가 어려운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