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버킷리스트(2007), 죽기 전에 파라미드 보기,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후세계는 저승에 가면 신의 첫 번째 질문이 “인생의 행복을 찾았는가?” 두 번째 질문은 “자신의 삶이 다른 이를 기쁘게 했는가?”를 물어보고 사후에 갈 곳이 정해진단다.
나는 라스베이거스(룩소르 호텔)에서 피라미드를 처음 만났었는데(1995), 뭐든지 실경이 최고의 감동인 법! 기원전 이곳은 푸른 사바나의 땅인 카이로로 날아가라!
피라미드는 금자탑(金字塔), 뾰족한 모양이 금(金)자를 닮은 왕의 무덤이다.
쿠푸의 대피라미드는 시베리아에 매머드가 살아있던 4500여 년 전에, 아스완 채석장에서 사각돌 270만 개를 나일강의 홍수 때 운반하여 나무 롤러와 경사로를 이용해 노예가 아닌 노동자와 장인들이 20여 년 동안 건설, 충분한 식량(빵, 마늘, 맥주...)과 숙소가 제공, 현대판 뉴딜처럼 비수기에 일자리를 제공했을 것이다.
왕인 파라오의 신성함을 강화하고 부활을 믿었기에 사후세계의 왕궁을 지은 것이다.
사막기후로 식물이 자라지 못했고, 돌산이라 지반이 튼튼해 지금까지 유지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피라미드를 구경한 분은? 조선 최고의 엘리트 해외 파견단의 민영익, 서광범, 변수... 등의 보빙사(報聘使, 1883)는 일본 요코하마에서 2달 걸려 샌프란시스코-뉴욕, 다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이집트 피라미드로... 일제강점기 신라의 땅으로 일본에서 여행을 왔듯이 당시 이집트는 유럽 상류층의 관광지... 일본 사절단의 피라미드 기념사진(1864)과 달리 보빙사는 피라미드 등반 및 내부 탐사를 거부했다는 루머(?)가 있고, 이후 인도와 싱가폴, 일본을 거쳐 귀국(1884), 최초로 세계여행을 했고, 한국인 중 최초로 프라이드치킨을 먹은 게 이들이다.
피라미드의 낙서: 급여, 마누라의 바가지로 공사판에 출근, 숙취에 의한 결근 사유... 건설노동자들과 로마인들의 낙서가... 하기야 뉴턴도 학창시절 “I Newton”(영국 킹스스쿨 벽)이라 낙서를 했고, 충격은 1997년 오하이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만난 한국어 낙서(♀♥♁)였었고, 앙코르와트, 폼페이, 영역표시도 아니고... 피라미드가 오래 남은 이유는 사막기후로 비와 식물이 적은 환경이고, 이 건축술은 크레타 문명이나 파르테논, 마야와 잉카 문명에 그리고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까지... 그러나 도굴꾼들의 사냥감, 건설비용 문제로 왕가의 계곡으로 무덤이 이동하게 된다.
왕인 파라오(Pharaoh)도 파락호(破落戶)도 모두 나약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내가 피라미드처럼 단단해야 하는데... 나(我).
피라미드 내부를 관람한 자는 모두 착하게 부활하여라!
나의 삶이 다른 이를 기쁘게는 아니더라도 아픔을 주지는 않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