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가 치과 냄새는 안 나고 오일 냄새 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민봉기(민플러스치과) 원장이 레이싱에 푹 빠지게 된 것은 2014년 폐차를 앞둔 엑셀밴을 다시 만나면서다. 엑셀밴은 현대자동차에서 만든 소형차로 민 원장이 대학생 시절 몰던 인생 첫 차이기도 하다.
작은 짐꾸러미 하나만 실을 수 있던 작은 차였지만 민봉기 원장은 엑셀밴을 이끌고 25년지기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지금의 아내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엑셀밴은 민 원장의 청춘이었다.
젊은시절 희노애락을 함께한 엑셀밴을 다시 만났지만 세월을 고스란히 맞은 자동차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부식된 부품을 비롯해 차량 전체를 뜯어 고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조차 만만치 않았다. 20년이 훌쩍 넘은 올드카의 부품을 찾는 것은 모래알 속 진주를 찾는 일이었고 어렵게 찾은 부품을 들고 카센터를 가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결국 민 원장은 엑셀밴을 직접 손보기로 한다. 평소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치과진료가 끝나면 곧장 지하주차장으로 달려가 매일밤 복원 작업에 매달렸다. 이후 도움을 주는 고마운 인연을 하나둘 만나면서 엑셀밴을 무사히 복원했다.
“꼬박 1년을 복원 작업에 매진하자 엑셀밴의 성능도 눈에 띄게 좋아졌죠. 그래서 이 차가 보기보다 훌륭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어요”
카레이서 챔피언에 도전하다
민 원장은 자신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난 엑셀밴을 타고 또다른 청춘 드라마를 그리기로 한다. 올드카 레이싱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다.
때마침 백만 원이 넘지 않는 자동차만 참가할 수 있는 레이싱 대회 ‘언더백레이스’가 열렸고 민 원장은 고민 없이 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쟁쟁한 선수들과 경쟁하기에는 드라이버로서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당찬 포부를 안고 참가한 첫 대회에서 민 원장은 보기좋게 꼴등을 차지했다. 이후에도 잇따라 아쉬운 성적을 거두며 쓰라린 고배를 마셨다.
불굴의 도전정신 일등 만들다
민 원장은 수소문 끝에 드라이빙 스쿨을 알아내고 고수에게 직접 드라이빙 기술을 배워나갔다. 그렇게 밤낮없이 열정을 쏟아낸 그는 2018년 다시 참가한 대회에서 챔피언 자리를 차지하며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순간 꼴찌에서 일등이 되기까지 3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갔어요”
민 원장의 이같은 도전 정신은 프라모델 세계에서도 유명하다. 17년 전 해방 800m 산골짜기에 있는 강원도 하장보건지소에서 공중보건의로 복무한 그는 보건소를 찾는 환자가 없어 하루에 환자 한 명만 보는 일이 많았다.
그때 섬세한 손기술이 생명인 치과의사로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잡은 것이 프라모델이다. SNS가 전무했던 당시 민 원장은 온라인에 일기처럼 제작기를 기록했고 언제부턴가 프라모델 마니아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완성도 높은 프라모델로 인기를 누리던 민 원장은 내로라하는 대회에서 잇따라 이름을 알리며 이제는 회원 5만 명을 이끄는 프라모델 카페 ‘민봉기의 건프라월드’의 수장이 됐다.
취미는 ‘이류’ 나눔은 ‘일류’
민 원장은 자신의 남다른 취미 사랑이 사실 치과의사의 답답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치과를 보면 대기실과 진료실은 으리으리한 데 비해 치과의사가 지내는 원장실은 한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에요. 그곳에 머물며 느끼는 답답함을 풀 수 있도록 치과의사에게도 취미 활동이 필요해요”
취미 활동으로 얻은 긍정적인 에너지가 곧 치과 직원과 환자에게 전달되고 평화로운 치과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 그의 경영 철학이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겠다”면서 민 원장은 이제 국제스포츠 실탄사격 연맹에서 새로운 도전기를 그려나가고 있다.
민 원장은 치과의사로서, 취미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자신의 노하우를 재능기부로 전수하며 사회 환원 활동에도 앞장서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자기만족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선물하는 이타적인 사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