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치과 내 전문과목은 ‘예방치과’이다. 평생 집중적으로 공부한 과목이 ‘예방치과’라는 의미이지만, 치과 내 전문과목이 ‘예방치과’이지 다른 과목을 공부하거나 시술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40년이 넘게 장 속에 잠들어 있는 ‘치과의사 면허증’이 있기 때문에 어느 과목의 진료이든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40이 넘은 나이에 상급종합병원에서 오라고 하니까 개업을 접고 가서 20년 동안 예방치과 관련 진료를 주로 하다 보니, 그나마 치과의사 면허를 받고 젊은 시절(?) 20년 정도를 열심히 해 왔던 근관치료나 수복치료, 악안면구강외과 진료 등을 멀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상급종합병원에서 20년 동안 미친 듯이 예방치과 관련 공부를 했던 덕인지, 구강보건통계학, 공중구강보건학, 예방치학, 구취관리학 등의 과목을 전공한다고 표방하면서 어느 분야에서는 2인자 내지는 1인자의 위치에 도달하는 느낌도 잠시(?)나마 들었던 것 같다.
교수 시절 필자를 어렵게 한 질문을 한 수강생이 두 분 있었다.
한 분은 예방치과 관련 강의 중에, ‘불소 바니쉬’에 관한 질문을 했다.
‘액상 불소용액과 달리 불소 바니쉬는 불소 침착 효과가 높다고 하는데, 바니쉬가 1~2분 후에 굳으면 결국은 굳어 있는 레진 막 안에서 불소 성분도 치아와 반응이 어려울 것이고, 씻겨 나가거나 탈락되어 기대하는 효과는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질의하는 모 대학 치위생과 교수님의 질문이 있었고, 필자의 구강보건통계학 강의 시간에 석사과정 치과의사 대학원생 한 분이, 요즘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왜 수식을 사용하여 노트에 답을 적는 이런 강의를 들어야 하는지를 따지며 물었던 적이 있다. 곤혹스러운 질문들이었다고 기억이 된다.
첫 번째 불소 바니쉬의 경우는 레진막 내에 갇혀 있는 불소 성분이 치면과 반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지 않겠냐고 답변을 주었지만, 주변의 분위기 탓인지 해당 교수는 ‘더 이상 질문해 보았자 속 시원한 대답이 나오겠느냐?’는 표정으로 추가 질문을 참았던 것 같다.
두 번째 구강보건통계학 시간의 강의 방법에 대한 질문은 질문하신 선생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이론적인 이해가 되어야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 있지 않겠냐고 설득을 해 보았지만, 이미 질문자의 얼굴에는 구태의연한 대답을 들었다는 표정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불소 바니쉬’를 바를 때마다 해당 질문이 떠올랐고, 1~2분 정도 후에 바니쉬가 초기 경화되고 나면, 액상 불소나 gel을 사용할 때는 불가능했던 행위로 여겨졌던, 필자가 직접 거즈 등으로 닦아내어 잉여 불소를 제거하고 약하게 물로 양치해서 뱉어내는 방법을 활용하면서, 환자에게 1시간 정도는 식음이나 칫솔질을 금하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 그 질문에 대해 고민해온 결과일 것이다.
두 번째 구강보건통계학 시간의 곤혹스러움은 필자로 하여금 당시 인기 있는 ‘I’사의 상용 통계프로그램으로 강의를 대신하면서 라이센스 강의파트너 자격을 획득하는 계기는 되었지만,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은 1개월 남짓 사용할 수 있는 temporary version의 프로그램 이외에는 비싼 통계프로그램 자체를 구매하기가 부담스럽고, 결과적으로 해당 프로그램을 통한 연습 기회가 적어, 통계학 이론마저 제대로 숙지하기 어려운 이중고에 시달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예방치학 강의는 필자를 대신할 교수님들이 즐비한지라, 강의 기회가 줄어든 필자가 강의 시간에 질문을 받는 기회는 별로 없었다. 구강보건통계학의 경우, 필자가 출판사를 설득하여 강의 교재는 계속 개발했지만, 필자의 능력 부족인지 강의할 기회는 점차 줄어들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대학원생들은 구강보건통계학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걱정도 되는 편이었다.
우리는 ‘전공’이라는 단어와 ‘전문’이라는 말을 혼동할 때가 많은 것 같다. 필자의 ‘치과 내 전문과목’을 물으면 당연히 ‘예방치과’라고 답하고, ‘공중구강보건학’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대답을 한다.
더불어 세부 전공과목은 ‘구취증의 예방’이라고 서슴없이 대답할 듯하다. 필자의 치과전문의 자격증에는 ‘예방치과’로 표기되어 있다. 수련 과정을 거쳐 치과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과목이 그러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필자가 ‘예방치과’와 연관된 과목들은 등한히 하기는 어렵다.
타 과목의 전문의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쉬워 보이는 예방치과 전문의도 예방치과 전문의가 아닌 분들과는 차별된 지식과 술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방치과 전문의인 필자와 필적할 실력자를 ‘재야’에서 만날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전문 영역’은 지식의 넓이로 표현할 수 있고, 이는 얼마든지 과목 간에 겹칠 수 있고, 본인의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의 영역을 타 영역으로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치과의사로 불리우는 치과의사도 노력하면 예방치과 전문치과의사에 필적할 실력을 갖출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필자를 본인이 속한 학회 내에서는 ‘구취 전문가’로 불러 주고, 유치하지만 이 분야에서 국내에서의 실력 순위를 매긴다면 위쪽에 가까울 것이다. 유명한 치과대학병원의 교수들을 마다하고 언론사 기자라는 분들은 필자에게 ‘구취’를 물어본다.
이제는 필자가 정년퇴직을 했으니 사양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비교적 듣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어 의뢰한다’고 부연설명해 주었다.
전공이라는 말에는 ‘깊이’의 의미가 함축된 듯하다. ‘전문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해당 전문과목에 대한 수련 과정과 일정한 시험 합격 과정이 필요한 것이고, 해당 전문과목 영역과 관련된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계속 더 축적해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라면, 이와는 달리 세부 분야의 전공자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서의 오랜 기간의 깊이 있는 연구와 학습이 필요한 것 같다.
자격증의 유무가 아니고, 전공자에게는 깊이 있는 공부와 이에 관련된 타인들의 ‘인정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날이 공교롭게도 6월 9일이다.
필자의 ‘치과전문과목’에 어울리려면, ‘구강보건의 날’을 맞이하여, 어느 공식 석상에서의 ceremony에 참석해야겠지만, 이제는 ‘정년퇴직 후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학술대회에 참석하여 ‘강연’도 듣고 전시회도 구경하면서, 평소 친했던 ‘치과관련 산업의 역군들’과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기본적으로 필자는 ‘치과의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깊이 있는 전공 연구가 중요해도, 필자가 파기 시작한 ‘굴’(?)의 ‘입구’가 부실해지면, ‘굴’ 자체를 찾기 어려워진다.
시간이 많은 필자는 이틀간에 걸쳐 오랜만에 후배 치과의사분들의 강의에 푹 빠져 보았다. 모교 교수님(후배)의 어려운 내용의 강의를 들으면서, 필자의 떨어진 학습 능력도 자각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필자가 오래 전에 받았던 앞서의 ‘두 가지 질문’을 그 교수님은 평생 받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도 해 보았다.